두문동과 효암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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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효암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1.♡.203.159) 작성일15-03-19 10:57 조회6,290회 댓글0건본문
두문동과 효암재 이야기관련이슈 : 주부 칼럼
어렸을 때부터 나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어른들이 이야기를 하면 가만히 듣고 있다가 친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아주 무서운 이야기는 정말 으스스하게 말해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섭게 귀신이야기를 했다. 감나무가 많이 있는 밭 위에 창녕성씨 5세손 묘소가 모셔져 있다. 참배만하고 내려오는데 바로 밑에 4세손 비가 모셔져 있다. 원래는 4세손이 위에 있고 5세손이 밑에 있어야 정상인데 4세손 할아버지 묘는 없단다. 두문동 72현 중의 두 분이 여기 석실에 모셔져 있단다. 조선왕조 초에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가 왕권을 수립했을 때 새 왕조 섬기기를 부끄럽게 여겨 두문동 깊숙이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는 성사제의 호는 "두문자"라고 한다. 두문불출하겠다는 의지로 그렇게 호를 새겼단다. "왕 씨의 귀신이 될지언정 이가의 신하는 되지 않겠다."라며 두문동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내가 죽더라도 시체를 염하지 말 것이며 봉분도 만들지 않음이 옳을 것이다." 하여 무덤이 없단다. 끝까지 지키려 했던 충과 효, 부인에게 아들을 데리고 고향인 창녕으로 내려 갈 것을 부탁하고 두문동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다. 지금도 창녕에는 그의 후손들이 많다고 한다. 성석주가 그의 직계 선조이자 두문동 72인 중의 한사람인 성사제의 행적을 기록한 글이 그 유명한 "두문동 실기"로 내려오고 있다.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를 가진 전주이가로써 많은 죄를 지었나 보다. 왕족이라고 그동안 은근히 자부하며 살았는데 여기 산소에 와보니 그 핏줄로 말미암아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었으니 역사가 알고 있는 사실 앞에 무슨 말이 필요하랴. 효암재로 향한다. 성대기 명예회장이 화천군 할아버지에 대해 말씀하신다. 화천군 할아버지의 증조부 집이란다. 화천군 할아버지는 딸이 명나라의 황후가 되어 화천 부원군이 되셨단다. 명나라 황실 풍속에는 황후가 죽으면 쓰던 물건을 모두 친정으로 돌려보냈단다. 그 많은 유물을 다 해방 후까지 보관하고 있었는데 도난을 당했단다. 고려의 충신인 화천부원군은 학자로 계셨는데 반역으로 연루되어 그 가족들이 모두 흩어지게 되었단다. 200년이 지난 뒤에 복원되었다고 한다. 효암재의 내력은 이렇다고 한다. 700여 년 전 대학사로 계시다가 돌아 가셔서 고향으로 모시게 되었단다. 아들 형제분이 조석으로 산소를 지켰단다. 이 동네는 효자동이고 효자 산이란다. 원래의 이름은 사투리로 큰 소자 암이란다. 그래서 나라에서 효자지문이라는 정문을 받았단다. 국가에서 문화재로 복원했으며 동국여지승람에 들어 있다고 한다. 지금의 효암재는 1987년에 다시 건립하게 되었단다. 광산군 양동으로 향한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곳, 월석마을 종손 집에는 산소에 가지 않고 집에서 시제를 모신다. 옛날 가풍 그대로 지낸다. 길택조카가 들려주는 오사쟁화는 재미있다. 벼슬을 지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나라에서 묏자리를 지정해 주었는데 그 아들이 보기에 별로 좋지 않아 다른 곳을 지정받았단다. 그런데 그곳이 바로 오사쟁화, 다섯 마리의 뱀이 한 마리의 개구리를 놓고 싸우는 격이니 분쟁이 끊이지 않았단다. 어느 집이나 재물이 늘어나면 재산싸움을 하듯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으나 아마도 재산 쟁탈전이 아니었을까? 요즘 말하는 음택과 양택을 말한다. 명당자리를 찾아 발복하기를 원하는 사람들, 공덕을 쌓고 정성을 드린 후에 오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느 할아버지는 나주로 낙향하여 살았다고도 한다. 우리들은 대봉산에 있는 화천 부원군 산소를 찾아 헤맨다. 그 아들과 손자 산소도 있다고 한다. 확실치 않는 길 안내에 헤매다가 여자들은 뒤로 쳐지고 남자들은 씩씩하게 화천부원군 산소를 향해 전진한다. 뿌리를 찾아 헤매는 후손들은 많은 것을 보고 느꼈으리라. 말하지 않아도 물은 아래로 흐르는 법, 쉽지 않은 길이어도 조상이 있기에 내가 있다는 것을 알고 깨닫는 좋은 기회이다.
원문출처 :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0/12/03/2010120300071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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