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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녕성씨시랑공종중 :::
문묘 및 묘소소개 묘소소개 묘소소개

묘소소개

고려 문하시랑공의 묘역 소개


1. 사적지의 내력사

고려 중윤호장으로 지역을 통치하던 창녕성씨 시조(휘: 인보) 중윤공의 자손이요 고려 문하찬성사의 장자이신 광정대부 문하평리공(휘: 군백)으로부터 9세에 이른 선대조상의 혼령 분묘를 모시고 성지인 지역이다.

2. 위치와 방향

서쪽으로 약 50 미터 앞 선산입구에 고려문하시랑공의 묘역 성지를 장대석비로 안내하고 있다.

3. 추모의 사적 성지

사적 제 1호, 5호, 6호, 7호에 이른 사적지로서 각각 사적비에 옛 조상님에 대한 추모의 사적을 간략하게나마 수록하였으니 효손으로서 정성껏 읽어보고 숙지하여 조상님의 거룩하신 현작공훈에 보본의 충정으로 받들어 수호영수지지로 승화시켜야 할 것이다.

1) 사적 제 1호 : 5세 문하시랑공 묘역

5세 문하시랑공(종1품) 우문관 태학사(휘: 이) 부군의 묘역으로서 상제 형제공의 려묘대효로 작설지 정려를 나라로 부터 받으신 거룩한 성지로서 사적이 생성하고 있는 성지이다.

2) 사적 제 5호 : 7위 신위 봉안 석실 단역

4세 광정대부문하평리공(휘: 군백) 부군에서 8세 판도판서(휘: 만용) 부군에 이르는 4대 7위의 신위를 봉안한 순석축 석실 지상건의 단역이다.

3) 사적 제 6호 : 9세 4형제공 부군의 묘역

8세 고려 판도판서 보문각 태학사 고려충신(휘: 만용) 판서공의 아들(휘: 혜, 경, 로, 지걸) 4형제 부군의 묘역을 모시고 있다.

 




4세 7위 묘소 : 창녕군 유어면 진창리 효암산

 

검교문하시랑 우문관 태학사
檢校門下侍郞 右文館 太學士

휘 이           
諱 履 (5世)   

  생졸연대 : 고려고종12년(1225)~ ?
  관      작 : 검교문하시랑 우문관태학사
  자      손 : 창녕. 진주. 거창. 대구. 봉화. 성주. 군위. 합천 등


1. 효암산론(孝巖山論)

  이 산의 행룡(行龍)은 다 기술할 수가 없고 화왕산(火旺山)의 한 줄기가 서쪽으로 뻗어 나가서 맥산(麥山)이 되는데 시조(始祖)의 묘소가 이곳에 있다. 또 한 줄기가 깊게 뻗어 나가다가 중간에 솟아오른 한 봉우리는 천마산(天馬山)이니 천마가 바람결에 우는 듯한 형세[天馬嘶風格=천마시풍격]이다. 이로부터 서남쪽으로 20리쯤 나가면 용세(龍勢)의 곡(屈曲)과 기복(起伏)에 의하여 괘등(卦燈), 마안(馬鞍),저두(猪頭), 금오(金烏), 진계(振鷄) 등의 희귀한 형세가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다. 진실(振室) 계령(鷄嶺)이 북쪽으로 꺾이기에 이르러 낙동강을 거슬러 화왕산(火旺山)의 묏부리가 좌우로 나래를 펼쳐서 효암동(孝巖洞)을 열었으니, 그 곳의 침유원(枕酉原)은 곧 시랑공(侍郞公)의 묘지이며 배위(配位)인 승평군부인(昇平郡夫人) 장씨(張氏)가 합폄(合?)된 곳이다. 시랑공의 두 아들 평리공(評理公)과 시중공(侍中公)이 3년 동안 시묘(侍墓)살이를 하며 읍혈(泣血)로 상(喪)을 마치니 그 고을 사람들은 지극한 그 효성(孝誠)에 감동하여 마을 이름을 효자동(孝子洞)이라고 일컬었다.

  행맥(行脈)이 갑묘(甲卯)로부터 혹은 병오(丙午), 혹은 오정(午正) 혹은 병오(丙午)로부터 곤중(坤中)에 이르니, 주성(主星)은 대갈(大渴)이나 금체(金體)를 이루었고 당심(當心)의 정혈(正血)은 유체(乳體)가 되고, 청룡(靑龍)의 어귀에  정축(停蓄)하게 되니 이 어포(漁浦)가 가물 때는 물이 다 마르지만 비가 올 때는 낙동강(洛東江)까지 물이 질펀하게 차게 된다. 경태(庚兌)는 용경(龍庚)으로 입수(入首)하니 유좌(酉坐) 묘향(卯向)이고 병오(丙午)로 득수(得水)이나 간파(艮破)하였다. 시랑공(侍郞公)의 묘(墓) 우변(右邊) 아래쪽에 시랑공의 고위(考位)이신 광정대부(匡靖大夫) 문하평리(門下評理)공 휘 군백(君百)의 제단(祭壇)을 비롯, 공의 두 아들 갑신(甲臣), 을신(乙臣), 공의 손자 희(禧), 사홍(士弘)공의 曾孫인 약용(若庸), 만용(萬庸)의 7위의 제단(祭壇)이 있으며 시랑공의 묘전 계하(階下) 동원(同原)에 공의 현손(玄孫)인 혜(蹊), 경(?), 로(路), 지걸(之傑)의 형제 4공(兄弟四公)의 묘가 있다.

* 별도로 시랑공의 묘 왼쪽변에 후손 유(?)의 묘가 있다.




2. 侍郞公墓碣銘 幷書(시랑공 묘갈명 병서)

  공의 휘는 이(履)이다. 성씨(成氏)가 창녕(昌寧)을 관향(貫鄕)으로 한 것은 중윤(中尹) 인보(仁輔)에게서 비롯하였다.  시중(侍中) 송국(松國), 찬성사(贊成事) 함필(漢弼), 문하평리(門下評理) 군백(君百)은 그 3세(世)이다. 공(公)의 출생은 송(宋)나라 이종(理宗), 1225년 때인데 고려(高麗) 고종(高宗)과 원종(元宗)을 두루 섬겼으며 관직은 검교문하시랑(檢校門下侍郞) 우문과태학사(右文館太學士)였고, 배위(配位)는 승평군부인(昇平郡夫人) 장씨(張氏) 판군기(判軍器)인 득운(得運)의 딸인데 돌아가셔서는 창녕의 남쪽 어촌면(漁村面) 효자동(孝子洞)정승등(政丞嶝) 침유원(枕酉原)에 합폄(合?)하였다. 두 아들의 맏이는 갑신(甲臣)인데 평리(評理)이고, 다음은 을신(乙臣)인데 시중(侍中)으로서 모두 지성(至性)이 있어서 어버이의 상(喪)에 시묘(侍墓)살이를 하였는데 후인들이 그 동이름을 효자동(孝子洞)이라 하고 그 산 이름을 정승산(政丞山)이라고 하였던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평리공의 아들 희(禧)는 비서감(秘書監)이고 시중(侍中)의 아들 원규(元揆)는 좌대언(左代言), 원범(元範)은 우보궐(右補闕), 사홍(士弘)은 찬성사(贊成事) 집현전(集賢殿) 태학사(太學士)이다. 비서감의 아들 약용(若庸)은 벼슬하지 않았다. 찬성공의 아들 만용(萬庸)은 판도판서(版圖判書) 보문각(寶文閣) 태학사(太學士)이고, 대용(大庸)은 제학(提學)이며 황조(皇朝)에서 화천부원군(花泉府院君)으로 봉하였고, 동량(同良)은 낭장(郞將)이고, 중용(仲庸)은 전서(典書)이다. 약용(若庸)의 아들 달덕(達德)은 찰방(察訪)이다.
 



시랑공(5世 履) 묘소 : 효암산 시랑공(5世 履) 묘비
시랑공(5세 이) 묘소. 묘비 : 창녕군 유어면 진창리 효자암산

 

  판서(判書)의 아들 혜(蹊)는 현령(縣令), 경(?)은 현감(縣監), 로(路)는 소윤(小尹), 지걸(之傑)은 밀직(密直)이고, 화천군(花泉君)의 아들 저(?)는 자식이 없고 충(?)은 참의(參議)이고, 낭장(郞將)의 아들은 효선(孝先)이고, 전서(典書)의 아들 재(載)는 병마사(兵馬使)이다. 달덕(達德)의 후손에 립(立)은 습독(習讀)으로 호가 모암(慕庵)이고, 혜(蹊)의 후손에 호(顥)는 문화현감(文化縣監), 희조(希祖)는 진사(進士), 민강(敏岡)은 벼슬하지 않았고, 경(?)의 후손에 적(績)은 판관(判官), 위(緯)는 참봉(參奉), 안례(安禮)는 장사랑(將士郞), 안지(安智)는 호가 매헌(梅軒), 안인(安仁)은 진사(進士), 안의(安義)는 우부승지(右副承旨) 증이조판서(贈吏曹判書)이고 호는 부용당(芙蓉堂)이며 창녕의 물계서원(勿溪書院)과 연암서원(燕巖書院)에 모셔졌고, 안리(安理)는 통덕랑(通德郞)이며, 안의(安義)의 아들 이성(以性)은 삼사(三司)를 역임하고 오주(五州)를 맡아 다스려 청백리(淸白吏)에 들었고 호는 계서(溪西)이며 영천(榮川)의 오천서원(梧川書院)에 모셔졌으며, 안중(安重)은 교리(校理), 량(亮)은 찰방(察訪), 여충(汝忠)은 참봉(參奉), 여효(汝孝)는 임진란(壬辰亂)에 교장(校長)으로 진주성(晋州城)에서 순절(殉節)하였고, 여신(汝信)은 생원(生員)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호가 부사(浮査)이며 창녕의 물계서원(勿溪書院), 진주의 임천서원(臨川書院), 정평(定平)의 비백사(鼻白祠)에 모셔졌다. 로(路)의 후손 희경(希慶)은 김방경(金方慶)의 일에 순절(殉節)하였고 호는 일재(逸齋)인데 효성(孝誠)으로 절충장군(折衝將軍)의 품계를 받았다. 여경(汝慶)은 주부(主簿), 안경(安慶)은 사복(司僕), 의경(義慶)은 호가 우수(迂受), 경침(景琛)은 선교랑(宣敎郞)으로 호는 작계(鵲溪)이다. 충(?)의 후손에 이심(以心)은 호가 반곡(盤谷)이고, 윤신(允信)은 호가 신묵재(愼?齋)인데 모두 고부(古阜)의 안산서원(安山書院)에 모셔졌다.

  공의 후손이 번성하여 도의(道義)와 문장(文章), 이행(異行)과 탁절(卓節)을 손가락으로 이루 헤아릴 수가 없기에 대략 그 드러난 이와 각 소종파의 파조(派祖)를 이상과 같이 열거하였다. 고인(古人)이 이르기를 “명문우족=名文右族이 조상의 충효(忠孝), 근검(勤儉)으로 말미암아 성립하지 않음이 없다.”라고 하니 공(公)을 두고 말한 것이다. 그 평생의 사행(事行)은 세대가 멀어서 살필 수가 없다. 명(銘)에 이르기를 !

   인도함이 깨끗함에 맑고 맑은 물가로다.
   북돋움이 두터움에 많고 많은 자손이라.
   사람과 사물은 한가지로 이러한 이치이니,
   진실로 그러함을 성씨(成氏)에게서 볼지어다.

   校理 眞城  李 晩
(교리 진성   이 만 규 지음)

 

 

  *여묘 용천지(廬墓湧泉地) : 효암산 시랑공 묘소 서편
 

천성(天性)이 지성대효(至誠大孝)하사 시랑공(侍郞公 諱 履)께옵서 서거(逝去)하시자 상제(喪制) 형제공(兄弟公:甲臣, 乙臣)께서 곡벽읍혈(泣血)로 삼년시묘(三年侍墓)하시니 신명(神明)이 감동(感動)하여 청수(淸水)가 용출(湧出)하였도다!
이 유지(遺址)를 기려 영세보전(永世保全)함이니 후예(後裔)들은 백원지효(百源之孝)를 다할지어다!



3. 侍郞公(諱 履)墓享 笏記 시랑공 (휘 이) 묘향 홀기
 

참 신(參神)

 

제자손 개성복 서립 재배
諸子孫皆盛服序立再拜

모든 자손은 다 제복을 입고 차례로 서서 재배하시오.

삼헌관관수 세수 식수 개강 복위
三獻官?手洗手拭手皆降復位

삼헌관은 손 씻고 닦고 원위치로 돌아가시오.

제집사 역여지 개강 복위
諸執事亦如之皆降復位

모든 집사도 또한 이와 같이 하고 원위치로 돌아가시오.

 

 

초 헌(初獻)

 

찬자인 초헌관 승예 위전분향 재배
贊者引初獻官升詣位前焚香再拜

찬자는 초헌관을 모시고 신위전에 나아가 향 꼽고, 초헌관은 재배하시오

소 퇴 입
少 退 立

초헌관은 조금 물러 서시오.

우집사 취건 식병구 실주 우주
右執事取巾拭甁口實酒于注

우집사는 수건으로 술병입을 닦고 그릇에 따르시오.

좌집사 취 탁상 잔반 예세잔 세반
左執事取卓上盞盤詣洗盞洗盤

좌집사는 제상에 있는 잔과 잔반을 씻으시오

우집사 집주 입헌관 지우
右執事執注立獻官之右

우집사는 주전자를 들고 헌관 오른쪽에 서시오.

좌집사 진잔반헌관 지좌
左執事進盞盤獻官之左

좌집사는 헌관 왼편에서 잔반을 헌관에게 주시오.

헌관 수 잔반궤
獻官受盞盤

헌관은 잔반을 받아 꿇어 앉으시오.

우집사 궤짐주 우잔
右執事?斟酒于盞

우집사는 꿇어 앉아 술을 따르시오.

반주고처
反注故處

주전자를 본자리에 놓으시오.

헌관 좌수집반 우수 집잔
獻官左手執盤右手執盞

헌관은 왼손으로 반을 잡고 오른손으로 잔을 잡으시오.

진관 우지
盡灌于地

땅에 부으시오.

이잔반 수 좌집사반 고처
以盞盤授左執事反故處

좌집사는 잔반을 받아 본자리에 놓으시오.

헌관 면복흥 재배
獻官
伏興再拜

헌관은 다시 일어나 재배하시오.

우집사 집주 입 기우
右執事執注立其右

우집사는 주전자를 잡고 헌관 오른편에 서시오.

좌집사취 위잔반 입기 좌
左執事取位前盞盤立其左

좌집사는 잔반을 잡고 헌관 왼편에 서시오.

헌관 수잔 예세소
獻官受盞詣洗所

헌관은 잔을 받아 세소(잔씻는 곳)로 가시오.

세잔 식반
洗盞拭盤

잔반을 씻고 닦으시오

수좌 집사
授左執事

좌집사에게 주시오.

진예위전입
進詣位前立

신위 앞에 나아가 서시오.

좌집사이 잔반수 헌관
左執事以盞盤授獻官

좌집사는 잔반을 헌관에게 주시오.

헌관수 잔궤
獻官受盞

헌관은 꿇어 앉아 잔을 받으시오.

우집사 궤짐주
右執事
斟酒

우집사는 꿇어 앉아 술을 따르시오.

반주 고처
反注故處

주전자를 본자리에 두시오.

헌관 좌수 집반 우수집잔 삼제 우지
獻官左手執盤右手執盞三祭于地

헌관은 왼손으로 반을 잡고 오른손으로 잔을 잡아 세 번 땅에 지우시오

헌관 이잔 반수 좌집사
獻官以盞盤授左執事

헌관은 잔반을 좌집사에게 주시오.

좌집사 봉 전우고처
左執事奉奠于故處

좌집사는 잔을 받들어 제상위 본자리에 놓으십시오

비위 역여지
位亦如之

비위에 또한 같이 하시오.

헌관 면복 흥
獻官
伏興

헌관은 엎드렸다가 일어나시오.

소퇴 입
少退立

조금 물러 서시오.

좌 집사성 치자 우접 가염
左執事盛雉炙于
加鹽

좌집사는 꿩적에 소금을 쳐서 제상에 올리시오.

봉 전우 시저지남
奉奠于匙著之南

시저의 남쪽에 놓으시오.

계반 개급 시정저
啓飯蓋扱匙正著

메그릇 뚜껑을 열고 시저를 정저하시오.

헌관 이하 개궤
獻官以下皆

이하 모두 꿇어 앉으시오.

축집 판출 헌관지 좌
祝執板出獻官之左

축관은 축판을 들고 헌관 왼편에 앉으시오.

동향 궤독
東向

동쪽을 향하여 꿇어 앉아 축을 읽으시오.

헌관 이하 개흥
獻官以下皆興

헌관 이하 모두 일어나시오.

축치 판우향안
祝置板于香案

축관은 축판을 향안에 놓으시오.

헌관 재배
獻官再拜

헌관은 재배하시오,

강복위
降復位

본자리에 내려 가시오.

우집사 이타기 철주 자치 잔고처
右執事以他器徹酒炙置盞故處

우집사는 딴 그릇에 술과 적을 거두시오.

강복위
降復位

본자리로 내려 가시오.

 

 

아 헌(亞獻)

*아헌 이하는 초헌 차례와 같다.

찬자인 아헌관 진예 위전
贊者引亞獻官進詣位前

찬자는 아헌관을 모시고 신위전에 나아가시오.

우집사 집주 입기 우
右執事執注立其右

우집사는 주전자를 잡고 헌관 오른편에 서시오.

좌집사 취위 전잔반 입기좌
左執事取位前盞盤立其左

좌집사는 좌편에서 잔반을 헌관에게 주시오.

헌관 수잔반 예세소
獻官受盞盤詣洗所

헌관을 잔반을 받아 세소에 나아가시오.

세잔식반
洗盞拭盤

잔반을 씻고 닦으시오.

수좌집사
授左執事

좌집사에게 주시오.

진예 위전입
進詣位前立

신위전에 나아가 서시오.

좌집사 이 잔반수헌관
左執事以盞盤授獻官

좌집사는 잔반을 헌관에게 주시오.

헌관 수잔 반궤
獻官受盞盤

헌관은 잔반을 꿇어 앉아 받으시오.

우집사 궤짐주
右執事
斟酒

우집사는 꿇어 앉아 술을 따르시오.

반주 고처
反注故處

주전자를 원자리에 놓으시오.

헌관 좌 수 집반우수 집잔 삼제우지
獻官左手執盤右手執盞三祭于地

헌관은 왼손으로 잔반을 잡고 오른손으로 잔을 잡아 세번 당에 지우시오.

헌관 이 잔반수 좌집사
獻官以盞盤授左執事

헌관은 잔반을 좌집사에게 주시오.

좌집사 전우 고처
左執事奉奠于故處

좌집사는 받들어 제상위의 본자리에 놓으시오.

비위 역 여지
位亦如之

비위도 같이 하시오.

헌관 면복흥
獻官
伏興

헌관은 엎드렸다 일어나시오.

소퇴입
少退立

조금 물러 서시오.

좌집사 성간 자우 접가염
左執事盛肝炙于
加鹽

염 좌집사는 간적을 접시에 담아 소금을 처서 올리시오.

봉전우 시저지남
奉奠于匙著之南

시저의 남쪽에 놓으시오.

헌관 재배
獻官再拜

헌관은 재배하시오.

강복위
降復位

본자리에 내려 가시오.

 

 

종 헌(終獻)

*초헌, 아헌과 같다.

찬자 인종헌관 진예 위전
贊者引終獻官進詣位前

찬자는 종헌관을 모시고 신위 전에 나아가시오.

우집사 집주입 기우
右執事執注立其右

우집사는 주전자를 들고 오른편에 서시오.

좌집사 취위전 잔반 입기좌
左執事取位前盞盤立其左

좌집사는 잔반을 들어 헌관 왼편에 서시오.

헌관 수잔반 예세소
獻官受盞盤詣洗所

헌관은 잔반을 받아 세소에 나아가시오.

세잔 식반
洗盞拭盤

잔반을 씻으시오.

수 좌집사
授左執事

좌집사에게 주시오.

진예 위전입
進詣位前立

신위 앞으로 나아가시오.

좌집사 이잔반 수헌관
左執事以盞盤授獻官

좌집사는 잔반을 헌관에게 주시오.

헌관 수잔 궤
獻官受盞

헌관은 꿇어 앉아 잔을 받으시오.

우집사 궤짐주
右執事
斟酒

우집사는 꿇어 앉아 술을 따르시오.

헌관 좌수집반 우수집잔 삼제 우지
獻官左手執盤右手執盞三祭于地

헌관은 왼손으로 반을 잡고, 오른손으로 잔을 잡아 세 번 땅에 지우시오.

헌관 이잔수 좌집사
獻官以盞授左執事

헌관은 잔을 좌집사에게 주시오

좌 집사봉 전우 고처
左執事奉奠于故處

좌집사는 제상위 원자리에 놓으시오.

비위 역여지
位亦如之

비위 또한 이와 같이 하시오.

헌관 면복흥
獻官
伏興

헌관은 엎드렸다가 일어나시오.

소퇴입
少退立

조금 물러 서시오.

좌집사 성어 자우 접가염
左執事盛魚炙于
加鹽

좌집사는 어적을 접시에 담아 소금을 처서 올리시오.

봉 전우시저 지남
奉奠于匙著之南

시저의 남쪽에 놓으시오.

헌관 재배
獻官再拜

헌관은 재배하시오.

우집사 철갱 진숙수
右執事
羹進熟水

우집사는 국그릇을 내리고 숙수를 올리시오

입이 숙사 소경
立而肅
少頃

서서 잠시동안 엄숙히 기다리시오.

하시저 합반개
下匙著合飯盖

시저를 내리고 뚜껑을 덮으시오.

강복위
降復位

본자리에 내려 가시오.

 

 

사 신(辭神)

 

헌관 이하 개 재배
獻官以下皆再拜

헌관 이하 모두 재배하시오

축분 축문
祝焚祝文

축관은 축문을 소각하시오

집사 철주 입병
執事徹酒入甁

집사는 술을 퇴주하시오.

철병 전우 타기 내퇴
徹餠傳于他器乃退

제수를 철상하시오.

 

 

 

  창  녕  성  씨   형  제  사  공   묘  도  비    소 서          
  昌寧成氏兄弟四公墓道碑 小序  (9世)


四公 : 혜(蹊) . 경(踁) . 노(路) . 지걸(之傑)


  성씨(成氏)는 선조(先祖)에 형제사공(兄弟四公) 사형제분(四兄弟分)이 계셨으니 백공(伯公)의 휘(諱)는 혜(蹊)이요, 관의령현감(官宜寧縣監) 지거제현령(至巨濟縣令)이요, 중공(仲公)의 휘(諱)는 경(踁)이요 관중직대부(官中直大夫) 행의령현감(行宜寧縣監)이요, 숙공(叔公)의 휘(諱)는 로(路)이요 관군기소윤(官軍器少尹)이요, 계공(季公)의 휘(諱)는 지걸(之傑)이요 관밀직(官密直)이시다.  사공(四公)이 고려말(高麗末) 조선조초(朝鮮朝初)에 태어나서 벼슬길에 올랐으니 마땅히 기록할 만한 뛰어난 업적(業績)이 있을 것이나 지금 와서 상고(詳考)할 길이 없으며 그 묘소(墓所)마저도 세대(世代)가 너무 오래 되어서 역시 잃은 채 내려오고 있다.

  이에 여러 후손들이 제전(祭奠)과 쓸고 보살필 곳이 없어서 세대(世代)가 갈수록 한(恨)스럽게만 이를 것이다.  이제 와서 서로 모의(謀議)하여 힘을 합하여 창녕 유어면 효자암동(昌寧遊漁面孝子巖洞)에 자리잡아 초혼(招魂)하여 장사하니 바로 고조(高祖)이신 시랑공(侍郞公)의 묘소(墓所) 아래이다.

  이미 또 비석을 하나 다듬어 묘의 옆에 세우려고 정섭(正燮)군이 행장(行狀)을 찬술(撰述)하여 나에게 가지고 와서 비문(碑文)을 청하였다.  나 사양(辭讓)치 않고 생각건대 사람이 태어남이 조선(祖先)에 뿌리 두지 아니함이 없으니 아무리 먼 조선(祖先)이라 하여도 그 같은 기맥(氣脈)이 유통(流通)함은 잠시(暫時)도 쉬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 성인(聖人)이 제사(祭祀)의 예(禮)를 제정(制定)해서 자손(子孫)의 보본(報本)하는 정성(精誠)을 펴게 했으니 이것은 천리 인정(天理人情)이 잠시라도 그만 둘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파(世波)의 풍교(風敎)가 쇠퇴(衰退)하여져서 가정(家庭)의 기제사(忌祭祀)마저도 폐지(廢止)하자는 풍조(風潮)로 그 근친(近親)의 사당(祠堂)에도 왕왕(往往)히 오히려 제사(祭祀)를 지내지 않으려는데 하물며 먼 조선(祖先)의 묘소(墓所)에까지 이러하리오, 지금 성씨(成氏)는 이미 있는 묘에 그 제사를 폐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잃었던 묘소도 이와 같이 초혼의 예를 갖추어 묘사를 지내려 하니 가히 독실한 정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위대하구나.  혹들 말하기를 이는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의 일인데 지금 와서 초혼을 하여 장사(葬事)하는 것이 고례(古禮)에 있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에 나는 말하기를 예(禮)에 있는 것인지는 나는 알려고 하지 않으며 예(禮)는 정(情)에서 나오고 의(義)에서 일어나므로 만약 정과 의에 비추어 합당하다면 비록 고례(古禮)에 없었다 하더라도 역시(亦是) 가히 예(禮)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번 성씨(成氏)의 다스리는 일은 거의 정(情)과 의(義)에 합당(合當)하여 예(禮)의 본의(本意)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因)하여 서(叙)하노니 성씨(成氏)의 관향은 창녕(昌寧)이오, 고려 중윤(中尹)인 휘(諱) 인보(仁輔)로 비롯하여 족보(族譜)에 나타났으니 이로부터 고려말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덕망(德望)이 있는 분과 높은 벼슬에 오르는 분들이 대(代)를 서로 이어 국중(國中)의 명문거족(名門巨族)이 되었다.

  고조(高祖)의 휘(諱)는 이(履)이고 검교문하시랑(檢校門下侍郞)이요, 증조(曾祖)의 휘(諱)는 을신(乙臣)이고 검교문하시중(檢校門下侍中)에 이르렀으며 효행이 지극하여 여묘(廬墓)로 3년상을 마쳤다.  조고(祖考)의 휘(諱)


 



형제 4공(9세) 묘소 : 효암산 시랑공 묘 계하

 

는 사홍(士弘)이고 관도첨의찬성사(官都僉議贊成事)이요, 고(考)의 휘(諱)는 만용(萬庸)이고 관판도판서(官版圖判書)에 이르렀으며 고려가 망하고 새 이씨왕조가 서자 불복(不服)하여 절의(節義)를 지켰다.

  비(妣)는 군부인(郡夫人) 강양이씨(江陽李氏)이며 익산군사(益山郡事)인 (서(犀)의 딸이다.  백공(伯公)의 아들은 보귀(寶龜)이니 적성현감(積城縣監)이요, 삼귀(三龜)는 봉화현감(奉化縣監)이다.  중공(仲公)의 아들은 자아(自雅)이니 찬의(贊儀)요, 자좌(自佐)는 궁고사(宮庫使)요, 자보(自保)는 관평시서령(官平市署令)이요, 자량(自諒)은 관지(官至) 좌사간(左司諫)이시다.

  숙공(叔公)의 아들은 이온(以溫)이니 사정(司正)이요, 이공(以恭)과 이검(以儉)은 같이 생원(生員)이며 계공(季公)의 아들은 진(溍)이다.

  4공의 후손들이 빛나게 번창(繁昌)함과 더불어 여러 고을에 분포(分布)하여 문물(文物)과 문호(門戶)가 번성(繁盛)하여졌으니 가히 살펴서  그 유택(遺澤)이 드리워져 무궁(無窮)할지어다.

  명(銘)에 이르되,

  아! 이 4형제분이 한 집안에 태어나서 함께 미명(美名) 떨쳤으니 칭송(稱訟)도 자자(藉藉)했네.  오직 사적(事績)은 세원(世遠)하여 찾을 길 막연(漠然)하며 무덤마저 어디인지 신령(神靈)도 못 찾으니 여러 후손(後孫) 개탄(慨嘆)하여 초혼(招魂)하여 무덤 짓네.

  높다란 그 봉분(封墳)은 효자암(孝子巖) 언덕이라, 살았을 때 한 자리리라. 사후(死後)인들 따로 하랴.  상상(想像)하니 정령(精靈)께선 즐거움은 화흡(和翕)일세.  해마다 봄 가을엔 경건(敬虔)하게 봉사(奉祀) 드려 백세영원(百世永遠)토록 게을리 아니하며 끝없이 누리는 복(福) 무궁(無窮)하게 받으리라!

병인(丙寅:1986)년  하지절(夏至節)에

                          성산(星山)  이 헌 주(李憲柱)  근찬(謹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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